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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지방간을 갖고 있다는 사실, 저도 처음 들었을 때는 '설마 나는 아니겠지'라고 흘려들었습니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고기도 자주 먹는 편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간은 아프다는 신호를 잘 보내지 않습니다. 증상이 없다는 게 건강하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이번에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증상 없음 — 간이 조용한 이유
피곤할 때 "이게 다 간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분들을 주변에서 자주 봅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오후만 되면 몸이 축 처지면 자연스럽게 간을 떠올렸으니까요. 그런데 의학적으로 피로와 간 기능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피곤하다고 해서 간이 나쁜 것도 아니고, 피곤하지 않다고 해서 간이 건강한 것도 아닌 셈입니다.
간이 조용한 이유는 구조적으로 설명이 됩니다. 간 세포 자체에는 통증 수용체가 없습니다. 쉽게 말해 간세포에 염증이 생기든, 지방이 껴서 조직이 딱딱해지든, 심지어 혹이 생기더라도 간 자체는 아프다는 신호를 뇌에 전달하지 못합니다. 통증을 느낄 수 있는 건 간을 둘러싼 막뿐인데, 암이 10~15cm 수준으로 굉장히 커져서 막을 자극할 때가 돼서야 비로소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제가 이 부분을 알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럼 나는 내 간 상태를 전혀 모르고 살았겠네'라는 것이었습니다. 건강검진에서 특별한 소견 없다는 말만 들으면 안심했고, 몸에 별다른 불편함이 없으면 그냥 넘겼으니까요. 간경화(간섬유화가 진행되어 간 조직이 굳어버리는 상태)가 상당히 진행된 환자들도 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뒤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특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간수치 — 믿을 수 있는 숫자인가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AST', 'ALT'라는 항목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게 흔히 말하는 간수치입니다. AST(아스파르테이트 아미노전달효소)와 ALT(알라닌 아미노전달효소)는 원래 간세포 안에 존재하는 효소인데, 간세포가 손상되거나 파괴될 때 혈액으로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혈중 농도가 높을수록 간에 염증이나 손상이 있다는 간접적인 신호로 해석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간수치가 정상 범위 안에 들어오면 '간은 괜찮구나'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함정입니다. 간경화가 많이 진행된 경우, 오히려 파괴될 정상 간세포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간수치가 크게 오르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숫자는 정상인데 실제 간 상태는 심각한 역설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간장약으로 불리는 실리마린(밀크씨슬 추출물) 계열의 보조제를 먹으면 AST, ALT 수치가 다소 낮아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여기서 실리마린이란 밀크씨슬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간세포 보호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물질입니다. 몸에 나쁘지는 않지만, 근본 원인을 치료하는 약이 아닌데도 수치만 낮춰버려 병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을 가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만성 간질환이 있는 분들이 수치만 믿고 안심하는 건 특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간 상태를 좀 더 직접적으로 보고 싶다면 간 탄성도 검사(피브로스캔)를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간 탄성도 검사란 초음파를 이용해 간이 얼마나 딱딱해졌는지, 지방이 얼마나 쌓였는지를 수치로 보여주는 검사로, 검사 시간이 5~10분 정도로 짧고 통증도 없습니다. 정상 범위는 탄성도 기준 4~5점이며, 7.5점을 넘으면 만성 염증이 의심되고, 10점 이상이면 간경화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출처: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대사이상 — 술 안 마셔도 지방간이 생기는 이유
지방간은 술을 즐기는 사람들의 질환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합니다. 저도 오래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방간의 약 80%는 술과 관계없이 발생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입니다. 이 사실이 처음에는 솔직히 잘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탄수화물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에너지로 다 쓰지 못한 탄수화물이 중성지방으로 변환되어 간세포 안에 쌓이기 시작합니다. 간세포의 5% 이상에 지방이 끼면 지방간으로 진단합니다. 알코올이 없어도 과식, 운동 부족, 인슐린 저항성 등 대사 이상이 있으면 똑같은 과정이 일어납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호르몬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혈당이 잘 처리되지 않아 대신 지방으로 전환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집니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이라는 용어 대신 '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 Metabolic dysfunction-Associated Steatotic Liver Disease)'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MASLD란 비만, 공복혈당 이상,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같은 대사 이상이 동반된 지방간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이름을 바꾸는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술 때문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 것보다, 대사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 간 건강에 더 경각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목적이 크다고 합니다(출처: 질병관리청).
성인 네 명 중 한 명이 이 대사이상 지방간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기준이 있는데, 허리둘레가 남성 94cm 이상, 여성 80cm 이상이면 복부비만으로 분류되고 대사 이상 위험이 올라갑니다. 제가 직접 줄자로 재봤는데, 그 숫자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대사이상 지방간질환이 있는 경우 심혈관 질환 발생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3배 높다는 연구 보고도 있습니다.
- 비만 (BMI 25 이상 또는 복부비만)
- 공복혈당 이상 또는 2형 당뇨병
- 고혈압 (수축기 130mmHg 이상)
- 이상지질혈증 (중성지방 상승 또는 HDL 감소)
간섬유화 — 나빠진 간은 다시 좋아질 수 있는가
지방간이 계속 진행되면 간에 염증이 반복되면서 간섬유화(간 조직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과정)로 이어집니다. 간섬유화란 정상적인 간세포 대신 딱딱한 섬유 조직이 그 자리를 채워가는 상태인데, 이게 더 진행되면 간경화가 됩니다. 담당 의사가 빵을 비유로 설명한 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갓 구운 빵은 보들보들하지만 며칠 지나면 거칠고 딱딱해지는 것처럼, 간도 그렇게 변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번 내용을 보면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사례는 간 탄성도 점수가 16.6이었던 분이 1년간 꾸준한 운동 끝에 6.3으로 떨어진 경우였습니다. 처음엔 10점만 넘어도 간경화 가능성을 의심하는 수치인데, 그걸 거의 절반 이하로 낮춘 겁니다. 비결은 특별한 약이 아니라 하루 1~2시간 걷기와 계단 이용이었습니다. 근육량이 늘어나면 인슐린 저항성이 개선되고, 이것이 간의 대사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어진다는 원리입니다.
물론 모든 경우가 이렇게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 단순 지방간이라고 해도 어떤 사람이 지방간염으로 진행되고, 어떤 사람이 그 단계에서 멈추는지는 아직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현재 의학의 솔직한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 지방간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안심하는 것은 좀 이른 판단일 수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단순'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놓였는데, 이제는 그 '단순'이 언제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전제를 함께 생각하게 됐습니다.
간암은 우리나라 주요 암 중 5년 생존율이 네 번째로 낮은 암입니다. 조기 발견이 어렵기 때문인데, 결국 지방간 단계에서 관리가 시작되느냐가 그 이후 경로를 상당 부분 결정합니다. 지방간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면, 그레이존(그 자체로는 심각하지 않지만 방치하면 나빠지고, 관리하면 좋아질 수도 있는 중간 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술을 전혀 안 마시는데 지방간 진단을 받았습니다. 왜 그런 건가요?
A. 지방간의 80%는 알코올과 무관하게 발생합니다. 탄수화물 과잉 섭취, 운동 부족, 인슐린 저항성, 비만 등 대사 이상이 주된 원인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식습관과 대사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이 처음에는 납득이 잘 안 됐는데, 원리를 이해하고 나니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Q. 건강검진에서 간수치가 정상이면 지방간이 없는 건가요?
A. 간수치(AST·ALT)가 정상이라고 해서 지방간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지방간은 혈액 검사보다는 영상 검사(초음파, 간 탄성도 검사)로 더 정확하게 확인됩니다. 간수치가 정상이어도 지방간이 있을 수 있고, 역으로 간경화가 많이 진행된 경우에는 간수치가 오히려 낮게 나오는 역설도 생깁니다.
Q. 단순 지방간이라고 했는데 그냥 두면 안 되나요?
A. 단순 지방간이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 지방간염이나 간경화로 진행되는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 지방간이라는 말을 들어도 생활습관 개선과 정기 추적 검사는 계속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저도 '단순'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도감을 너무 믿지 않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Q. 지방간에 좋다는 밀크씨슬(실리마린) 보조제, 먹어도 되나요?
A. 실리마린 계열 보조제는 몸에 직접적인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간수치를 다소 낮추는 효과가 있어 실제 간 상태가 악화되고 있어도 수치만 보면 안심하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근본 원인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므로, 복용하더라도 정기적인 영상 검사와 병행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결론
이번 내용을 정리하면서 제가 가장 크게 반성하게 된 건 '증상이 없으면 괜찮다'는 착각이었습니다. 간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지 않는 장기입니다. 그래서 더 무섭고, 그래서 더 미리 챙겨야 하는 장기이기도 합니다. 피로가 간 때문이라는 믿음은 틀렸지만, 간이 나빠지고 있어도 피로조차 못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훨씬 더 주의가 필요한 진실입니다.
제 경우엔 이 내용을 보고 나서 늦은 야식을 줄이고, 식후 걷는 습관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간이 나빠지는 경로를 이해하고 나면 그 작은 습관이 달리 보입니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도 이제는 간수치 숫자 하나만 보고 넘기지 않고, 필요하다면 간 탄성도 검사 같은 추가 검사를 요청할 생각입니다. 지금 당장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 가장 위험한 신호일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는 것, 그게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