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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식 외과의사가 말한 진짜 실력 (배경, 리더십, 전망)

by richman21 2026. 7. 13.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혼자 잘하는 것"이 실력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렵게 익힌 방법을 나눠버리면 경쟁력이 사라진다는 생각도 했었고요. 그런데 간이식 외과의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믿음이 조용히 무너졌습니다. "내가 유일한 사람인 것은 가장 좋지 않은 모델"이라는 한 문장이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간이식이 다른 수술과 다른 이유 — 배경

우리나라에서 간이식(肝移植)이 처음 시행된 것은 1988년 무렵입니다. 여기서 간이식이란 기능을 잃은 간을 적출하고 기증자의 간 일부 혹은 전체를 이식해 기능을 회복시키는 수술로, 간암·간경화 말기 환자에게 사실상 마지막 치료 수단입니다. 당시 의대생으로 그 수술을 처음 목격한 사람들은 "오후 3시에 시작해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지는" 광경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 이 분야가 얼마나 극단적인 체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는지 실감했습니다.

간이식이 다른 수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생체기증(生體寄贈)이 전제된다는 것입니다. 생체기증이란 건강한 사람이 자신의 간 일부를 살아있는 상태에서 떼어내 환자에게 주는 행위로, 국내 간이식 건수의 70~80%가 이 방식으로 이뤄집니다(출처: 한국간이식학회). 수술 난이도만 따지면 수혜자가 더 높겠지만, 심리적 난이도는 기증자 수술이 훨씬 크다는 말이 제게는 꽤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기증을 안 하는 것이 기본값인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결정한 사람의 의지가 순수한 것인지 확인하고 보호하는 일까지 외과의사의 몫이 된다는 이야기니까요.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나눠주는 사람이 사실 가장 많은 것을 짊어진다는 감각은 다른 영역에서도 반복적으로 느껴왔습니다. 기증자가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쌓이는 감정적 무게를 의사가 함께 안고 가야 한다는 점, 그것이 이 수술을 단순한 기술 문제 이상으로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간이식 수술은 수혜자와 기증자 양측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이중 책임 구조
  • 국내 생체기증 비율은 전체 간이식의 약 70~80%로, 뇌사자 기증 비율보다 압도적으로 높음
  • 기증자가 자발적 의사로 결정했는지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수술 전 필수 절차
  • 간이식은 여전히 전체 수술 중 사망률이 높은 축에 속하는 고위험 수술
요약: 간이식은 기증자와 수혜자 모두를 책임지는 수술로, 기술 난이도와 심리적 부담이 동시에 가장 높은 분야입니다.

 

"내가 유일한 사람"이 왜 나쁜 모델인가 — 리더십

펠로(Fellow), 즉 임상강사 1년차 시절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펠로란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특정 분야를 심화 수련하는 단계로, 쉽게 말해 "이제 막 독립 직전의 외과의사"입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 교수가 사실상 포기 분위기를 내비친 수술방에 홀로 남아 출혈을 계속 잡았고, 그 환자가 6시간 뒤 극적으로 회복했다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결론이 "제가 잘한 게 아니라 새로 들어간 간이 열심히 일한 것"이라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비슷한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팀 프로젝트에서 결과물이 잘 나왔을 때 무의식적으로 '내가 많이 했으니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되짚어보면 다른 사람의 역할이 훨씬 결정적이었던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자기 기여를 과대평가하는 습관은 생각보다 쉽게 생깁니다.

"포기는 배추 세는 단위"라는 표현은 재미있으면서도 정확합니다. 이식 수술에서 의사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전체의 10% 수준이고, 나머지 90%는 새로 이식된 간이 제 기능을 찾아가는 과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 90%를 믿고 기다리지 못하면 수술을 완성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걸 리더십으로 확장하면, 결국 자기 역할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팀원이나 시스템을 신뢰하는 능력이 핵심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20세기까지는 "명의(名醫)"가 추앙받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훌륭한 의사를 반복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기관이 더 많은 환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시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의사 1명이 환자 100명을 보는 것보다, 의사 10명이 500명을 보는 쪽이 사회적으로 훨씬 낫다는 계산은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게 의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분야든 자신만 알고 있는 지식을 독점하는 구조는 결국 그 지식이 사라지는 순간 함께 무너집니다.

요약: 진짜 리더십은 자신이 없어도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며, "내가 유일한 사람"인 상태는 가장 취약한 구조입니다.

 

AI 시대에 외과의사가 넘겨야 할 것 — 전망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즉 의료 데이터와 AI 기술이 외과 수술 영역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흐름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여기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란 기존의 노동 집약적 과정을 데이터와 자동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술 보조 로봇, 영상 분석 AI, 수술 기록 자동화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출처: WHO 인공지능과 보건 팩트시트에서도 AI가 외과 수술 보조 및 예후 예측 영역에서 빠르게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현재 세대 외과의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수십 년간 수술대에서 쌓아온 판단력과 감각, 기증자를 대하는 태도, 출혈이 멈추지 않는 새벽에 포기하지 않는 결정 같은 것들은 아직 데이터화되지 않은 영역입니다. 지금 세대 의사들이 그 노하우를 후배에게 말로 전달하는 동시에, AI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해 넘겨주는 것이 "전환기의 역할"이라는 이야기는 꽤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저도 어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이 정도는 당연히 아는 것"으로 여기고 설명을 생략하는 습관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당연함" 안에 가장 중요한 판단들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밤새 수술방을 지키며 쌓인 감각을 "어렵게 배웠으니 너도 어렵게 배워라"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건 사실 심술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쉽게 풀어서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교육입니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태도는 분명 존경스럽지만, 완화의료(Palliative Care)를 선택하는 것도 의료 윤리의 중요한 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완화의료란 치료 가능성보다 환자의 고통 경감과 삶의 질 유지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법입니다. 이 두 태도는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모두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의료 현장에서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은 단순히 "포기 vs 비포기"로 나누기보다 더 복잡한 판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AI 전환기의 외과의사에게는 수술 기술뿐 아니라 암묵지(暗默知)를 다음 세대와 시스템에 넘겨주는 역할이 요구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간이식 수술은 왜 다른 수술보다 사망률이 높은가요?

A. 간이식은 간 전체 혹은 일부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장시간 출혈 위험이 지속되고, 이식 후 새 간이 기능을 찾기까지 신체가 극도로 취약한 상태가 이어집니다. 수혜자 대부분이 이미 간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수술대에 오르기 때문에 기저 위험도 자체가 높습니다. 기술이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전체 외과 수술 중 위험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는 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습니다.

 

Q. 생체기증자는 간을 떼어줘도 괜찮은 건가요?

A. 간은 재생(再生) 능력이 있는 장기로, 건강한 기증자가 일부를 기증해도 남은 부분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자라납니다. 그렇다고 기증 자체가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며, 기증자 수술도 전신마취를 동반한 큰 수술인 만큼 사전 평가와 동의 과정이 매우 엄격하게 진행됩니다. 기증을 안 하는 것이 기본값이라는 전제하에, 자발적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입니다.

 

Q. 의료 AI가 발전하면 외과의사의 역할이 줄어드나요?

A. 줄어드는 역할도 있고, 새로 생기는 역할도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반복적 판단이나 영상 분석 같은 부분은 AI가 빠르게 대체할 가능성이 있지만, 기증자와의 신뢰 형성이나 예상치 못한 수술 상황에서의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세대 외과의사가 자신의 암묵지를 얼마나 잘 정리해서 다음 세대와 AI에 넘겨줄 수 있느냐가 전환기의 핵심 과제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Q. "포기하지 않는다"는 외과 정신이 의료 윤리와 충돌할 수 있지 않나요?

A. 저도 이 부분이 가장 복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분명 중요하지만, 환자의 상태·예후·본인 의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완화의료로 전환하는 결정도 의료 윤리의 중요한 한 축입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은 수술 중 기술적 포기를 하지 않는다는 맥락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이를 모든 상황에 일반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결론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저는 전문가의 조건을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는 실력"으로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정의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진짜 전문가는 자신이 쌓은 것을 다음 사람이 더 빠르고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라는 쪽으로요.

"침묵의 장기"라는 표현을 간에 쓰는 이유는 아파도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보면, 묵묵히 모든 혈액을 받아 정화하고 다른 장기들이 쉬는 밤에도 혼자 일하는 장기이기도 합니다. 30년 가까이 그 장기를 들여다보며 인생을 배웠다는 말이,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오래 남는 문장이었습니다. 저도 어떤 분야에서든 그 묵묵함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6RNcQW8rV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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